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변질된 유교적 전통 (문단 편집) ===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,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 === 이게 본래의 유교적 전통이라 착각되기 쉽지만, [[조선시대]] 한글 편지를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. 아래는 [[국어(교과)|국어]] 교과서에도 여러 번 실린 "[[이응태 묘 출토 편지|원이 엄마의 편지]]" 전문이다. >자내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, 어찌하여 나는 두고 자내 먼저 가시는가? 나와 자식은 누구에게 기대어 어찌 살라 하고, 다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? 자내는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, 나는 자내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던가? 함께 누우면 내 언제나 자내에게 이르되 이보소!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?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? 자내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 힘이 없네. 빨리 자내한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 가소. 자내를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길이 없네.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그지 없네.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리워하며 살려고 하겠는가.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이르소.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서 넣네. 자세히 보시고 내게 이르소. 자내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이 있다 하고서 그리 가시니,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굴 아버지라 하라 하시는고.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.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에 또 있을까. 자내는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,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러울까.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네.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, 내 꿈에 와 자세히 보이고, 자세히 이르소. 나는 꿈에 자내를 보려 믿고 있다네. 몰래 와서 보여 주소서.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. >---- >1586년 한 양반가 아낙이 죽은 지아비 이응태의 무덤에 껴묻은 [[https://www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1998/09/27/1998092770225.html|편지]]. 1998년 안동 정하동에서 발굴된 이후 [[역사스페셜]]에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. [[안동대학교]]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. 이 서간문을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'자내(=자네)'라고 부르고[*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, "자네"라는 말은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.],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[[하오체]]로 말하고 있다. 그리고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부부들은 서로를 하오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. 아무리 성리학이 교조화 된 조선 후기라도 연상 아내가 연하 남편에게 존칭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하대를 하는 일은 당시에도 막장 집안 취급 받았다. 부부간의 상호존중은 당시 양반 집안이라면 당연히 이루어지던 것이었다. 조선 후기보다 더 사회가 막장이던 일제 시대에도 부부가 서로를 자네라 부르며 존칭을 썼다. 거기다 부부간의 존칭 문제는 지도층이 권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. 현대의 [[고부갈등]] 문제는 일제강점기의 권위적인 수직 문화와 6.25 전쟁 이후 신분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너도나도 양반 집안을 자처하면서 만들어낸 비뚤어진 문화에 가깝다. [[시동생]] 문서를 보면 '''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유교를 권력 강화에 악용한 가부장적인 사람들과 그걸 억지로 심화한 비뚤어진 유교적 적폐 탓이라는 것'''을 알 수 있다. 이러한 악습은 현대까지도 가끔 영향을 미치는데, 해외 영화를 번역할 때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에게 동등한 관계에서의 화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, [[박지훈(번역가)|국내로 들여올 때 여자만 존댓말로 바뀌는 것이 그 예시이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